황정은, 문학의 쓸모에 대해
저녁이 되면 자괴감에 휩싸이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문학의 쓸모’로 답했다. 소설을 읽고 쓰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지금의 사회에서 소설은 무슨 역할을 할까. 사람들은 종종 작가를 향해 물었다.
“사실 제 입장에서는 굳이 대답하고 싶지는 않은 질문이에요. 이야기가 쓸모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 쓸모 없음이 실망스럽다면, 본인이 쓸모 있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데요. 일단 저는 문학의 쓸모를 묻는 질문 자체를 좋아하지 않아요. 세상에 차고 넘치는 쓸모를 굳이 문학에까지 들이대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편도 아닌데요. 어쨌든 책을 읽는다는 것은 미미한 무언가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읽기에는 아주 개별적이고도 긴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각자의 독서를 경험하는 것이고 그 경험이 동일할 수가 없죠. 그렇게 소설을 읽을 때 우리는 적극적으로 상상을 하잖아요. 이런 과정이 우리가 속한 사회라든가 관계 맺고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해서 생각하는 방식과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해요.”
동시에 작가는 문학의 쓸모를 묻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서글퍼진다는 고백도 덧붙였다.
“그런 질문을 하는 분들을 보면 괴로워하는 분들이 많아요. ‘내가 문학을 좋아하지만 이것이 이렇게까지 무력할 수가 있느냐’는 당혹감, 혹은 애정이 섞인 분노가 담겨 있는 거죠. 쓰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향한 가학적인 질문일 때가 많고요. 사실 문학의 쓸모를 묻는 질문은 제가 매일 저녁 스스로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기도 해요.”
현실에 압도당하는 순간마다 우리는 문학에게 묻는다. ‘너를 사랑하는 것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자연스레 작가에게는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이 따라 붙는다.
“‘나는 소설을 왜 쓰고 있지, 나는 책을 왜 읽고 있지’ 이런 질문으로 말라 죽어갈 때 『모든 것은 빛난다』의 메시지가 상당히 도움이 됐어요. 그 책에서 저자들이 ‘빛나는 것들이 분명 있는데 그것을 우리가 알아보지 못하고 발견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라는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그 책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으로 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세상이 엉망이라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죠. 그런데 빛나는 부분을 발견해 내기 위해서는 훨씬 더 많은 노력과 단련이 필요한 거죠. 지금 같은 때일수록 각자가 근력이나 안목을 지속적으로 기르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제가 조금씩 소설을 읽고 쓰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